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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Story/마음따뜻한사람들

변진주 후원회원님 인터뷰

 

 

소중한 아들을 기억하다

김범창 군은 올해 열아홉이었다. 3년 전, 20169월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악성림프종 3기로 진단받기 전까지는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또래보다 속이 깊은 아이였다. 아들의 병명을 들은 엄마는 엉엉 울음이 솟구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엄마이기에 마음을 다잡는 일이 먼저였고 희망의 끈을 부여잡아야 했다.

친정아버지와 언니를 각각 간암과 유방암으로 잃었어요. 언니의 보호자로서 옆에서 봐 왔기에 암 투병이 얼마나 끝이 없는 긴 싸움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병명을 듣고 표현하기조차 힘든 슬픔에 휩싸였지만 아이 앞에서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어요. 무엇보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범창 군과 엄마의 길고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병원 인근에 원룸을 얻어 둘이 지냈다. 항암치료가 뜻대로 되지 않고 치료에 진전이 없자 엄마는 담당 교수와 상의 끝에 20175월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항암치료에 힘들어하며 조용히 지내던 범창이지만 본원에 와서는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듬으면서 지냈. 엄마는 같은 아픔을 겪는 보호자들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는 따뜻한 날들이었다.

범창이가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이 아픈 걸 보면서 마음이 쓰였나 봐요. 아이들하고 잘 놀아 줬어요. 아이들 뿐 아니라 보호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당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처럼 지냈죠. 아예 밖으로 못 나가는 아이도 있, 퇴원을 했다가도 며칠 후에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하는 일이 일상이었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냈어요.”

 

사랑하는 엄마가 행복하기를

본원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을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6개월 후 골수 검사에서 재발을 확인하고 두 번째 이식을 했다. 다시 100일 후 재발했다. 이미 치료약도 없고, 치료 프로세스를 벗어난 상태였다.치료 과정대로만 잘 진행하면 1년 종결, 5년 완치를 꿈꿀 수 있지만 당시 범창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후였어요.

교수님께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남은 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제 병원에 남을지, 집으로 돌아갈지결정해야 했다. 엄마는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들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와 아들의 추억은 영상으로 남았다. 당시 범창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완화의료팀에서 진행한 KBS1 <거리의 만찬>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 중이었다. 제작진은 범창에게 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범창은 고생하는 엄마에게 깜짝 파티를 해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소아완화의료팀과 의료사회복지사들이 범창의 영상 편지와 파티 의상을 준비했다. 범창은 영상 편지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엄마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도움은 꼭 갚아야 한다

지난해 11, 범창은 서울대학교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고통을 참기 힘들었던 범창이 항암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때부터 올 6월 범창이 떠나는 날까지 병원생활을 이어 갔다. 12월 한차례 고비가 왔을 때도 힘겹게 버텨 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듣던 ‘3개월 남았습니다라는 대사가 범창에게 닥친 시기였어요. 고비가 많았지만 아이가 꽤 오래 잘 버텨 주었어요. 물론 아플 만큼 아팠죠. 의료진들이 고생해서 시간을 늘려 주었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암 종양이 퍼지는데, 범창이는 끝까지 장기를 건드리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해요.”

범창은 나중에는 말을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그럼에도 드문드문 말을 이어가며 하루 종일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정말 아프고 정말 힘들거든요. 그렇게 힘들면서도 일주일 내내 미안하다는 말만 하길래 그 말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아픈 아이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부담을 줬나 싶었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 아파요.”

엄마에게 줄곧 미안하다고 하던 범창은 올 6월 돌아오지 않을 먼 길을 떠났다. 엄마는 범창의 생일에 맞춰 매달 후원을 결심했다. 어린이병원에서 몇 차례 치료비를 후원받은 고마움에 결정한 일이. “우리가 워낙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도움 덕분에 범창이가 생각보다 오래 제 곁에 있었고요. 꼭 갚겠다고 생각했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 온 엄마는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병원이 더 편하고, 함께 병원생활을 하던 엄마들과도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엄마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엄마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희망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아들이 ‘실한 환자가 아니라 잘 버텨 준 환자라고 생각해 줘요. 지금도 병원에 자주 들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곤 해요.”

자그마치 ‘3의 투병이다. 엄마는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루 종일 둘이서만 꼭 붙어 지내던 그 시절은 우리 좋았던 날들이었다. 누군가는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고 위로하지만 부딪히는 가을바람도 아프게 다가오는 엄마 변진주 님에게는 흐르는 세월도 야속하다. 세월에 등 떠밀려, 바쁜 일상에 쫓겨 소중한 아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에서 아들의 모습은 하루하루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엄마는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한다. 범창이 마지막까지 가장 바란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 매거진VOM 25호 중 발췌 >